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안녕하세요

by 하아ㅏ루 2025. 5. 23.

국공내전 당시에 장제스의 중국국민당이 패주하면서 베이징시의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 중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유물 29만 점과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박물원의 핵심 유물들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유물 60만 8천 점을 선발해서 가져갔다.[3] # 그때 명실록 홍격본[4]과 자금성에 있던 사고전서 문연각본 역시 옮겨져 현재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 중이다. 그리고 중국사에서 중요한 문서들도 국립고궁박물원에 있다. 국내에는 일반적으로 2차 국공내전 후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을 가져간 것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상당수 유물은 열하사변 시기에 일본군의 화북 침략으로 인한 유물 파괴와 약탈을 피하기 위해 난징시, 상하이시로 대피시킨 것이다. 이후 중일전쟁 전황에 따라 쓰촨성 오지에 분산 보관하고 있었다. 이때의 유물 대피 과정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인데 홍콩 SCMP의 기사의 일러스트만 쭉 봐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 종전과 동시에 유물들을 다시 난징시로 옮겼는데 이후 국공내전이 재발하면서 베이징시로 옮기는 계획을 연기했다가 오히려 베이징 함락 직전 자금성에 남아있던 유물들 중 중요 유물을 난징으로 들고 왔다. 이 유물들 중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3천여 상자만 추려서 난징에서 지룽시로 실어나른 것이 현재의 소장품이다. 서류상으로 고궁박물원 유물의 주인은 대만 정부가 아니라 중국국민당이다. 국부천대 당시 장제스가 총통 자격[5]이 아니라 국민당 총재 자격으로 유물을 옮겼기 때문이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날 때 유물을 가져간 것은 무작정 '그냥 다 내꺼야!'하는 개인적 욕심 같은 건 아니었다. 장제스는 중국 전통 문화에 애착이 많았다. 그래서 신문화운동부터 별로 좋지 않게 생각했고 모조리 뒤집자는 공산주의는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중일전쟁의 급박함 속에서도 유물 먼저 챙겨서 온 것이나 훗날 중화문명부흥운동 등을 보면 중화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알 수 있다.